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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 도읍지 어떻게 정해졌을까?
작성자 허브누리 (ip:)
  • 작성일 2008-10-29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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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도읍지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엽전을 던져 길흉을
점치는 척전(擲錢)에 의해 최종 결정되게 되는데....

오늘은 조선의 도읍지가 한양으로 결정되기 위해 겪게 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394년 8월 한양으로 새 도읍 후보지가 결정되고, 두 달여
뒤인 10월 25일에 전격 천도가 이뤄졌답니다.

종묘가 건축되고, 이듬해 10월에는 경복궁이 완성이 되는 등
개국 3년이 지나면서 조선은 그럭저럭 나라꼴을 갖추게 됐답니다.

그러나 이처럼 조용하던 조선에서 태조가 병석에 누워있던
1398년, 후계자 문제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조선은 첫 위기를 맞게 된답니다.

결국 이방원은 둘째 형인 방과에게 왕관을 씌우게 되는데,
그가 곧 이름뿐인 왕이었던 '정종'이랍니다.

그런데 정종 1년(1399년) 2월 12일, 밤중에 뭇 까마귀가
대궐 위에 날아와 우는 등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는데...

마음이 편치 않은 정종은 형제들의 피로 얼룩진 한양을 떠나
개경의 수창궁으로 몸을 피하는데, 그리고 3월 7일에는 개경으로
아예 환도(還都)를 결정하고 만답니다.

이로써 조선은 수창궁 시대가 재개되지만, 그러나 기이한
현상은 그치지 않고 계속 됐답니다.

불길한 짐승들이 궁궐로 뛰어들고, 절에 있는 불상이 땀을
흘리기도 했는데, 이를 반증이나 하듯 1400년 1월 28일에는
넷째 왕자 방간이 방원에 맞서 두 번째 '왕자의 난'을 일으킨답니다.

이 때문에 개경은 또 한 번 피로 얼룩졌는데 친형제끼리 싸워
승리한 방원은 내친김에 정종의 양위를 받아 왕이 됐답니다.

그런데 태종이 즉위한 직후인 1400년 12월 22일 수창궁에
불이 나서 침전과 대전 등이 화마(火魔)에 휩싸이자
다시 한양으로 환도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진답니다.

이 때 하륜은 또다시 풍수지리설을 들먹이며 태종에게 무악으로
가자고 청하지만 태종은 백성을 수고롭게 할 수 없다며 그 주장을
일축했고 그 후 한동안 한양 환도 논의는 잠잠해졌답니다.

그러나 이 후에도 한양과 개경, 그리고 하륜이 주장하는 무악
천도론이 서로 맞서면서 지루한 논쟁이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논란의 종지부를 찍게 되는 사건이 생기는데, 1404년
10월 6일 새벽, 태종은 종묘 문밖에서 뜬금없이 이렇게 공표한다.
 
"이제 종묘에 들어가 송도(개경)와, 신도(한양)와 무악을
고(告)하고, 그 길흉을 점쳐 길한 쪽에 도읍을 정하겠다."

그런 다음 태종은 완산군 이천에게 묘당에서 척전을 하게
했는데, 그 결과 한양은 '2길(吉)1흉(凶)'이고, 개경과
무악은 '2흉(凶)1길(吉)'이라는 점괘가 나왔답니다.

마침내 한양 환도가 결정됐는데, 논쟁을 통한 합의가 아니라,
점괘 결과로 한양이 도읍지로 최종 결정된 것이랍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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