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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하필 다리에 서 아이를 주워 왔다고
작성자 허브누리 (ip:)
  • 작성일 2008-11-18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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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거의 듣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리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자라 왔는데...

왜 하필 다리에서 주워 왔다고 했을까요?

유교의 영향을 받고 자란 우리 선배 기성세대는 성이란
부끄러운 것이며 감춰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조상들은 결국 당시의 성교육의 한 방법으로 사람의 다리를
완곡한 표현으로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로 표현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다소 엉뚱하게도 "다리 혹은 청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워왔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답니다.

경북 영주의 순흥은 대개 영주의 이름난 사찰인 부석사를
가는 길에 별 생각 없이 들렀다 가는 곳으로

여행자들은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순흥 땅을 무심히
지나치지만, 순흥 땅 청다리에는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답니다.

소수서원 입구를 지나 부석사 방향으로 150m가량 올라가면
속칭 청다리란 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청다리의 원조는 죽계제월교(竹溪霽月橋)로 제월교 혹은
속칭 청다리로 불린답니다.

순흥은 조선시대 도호부를 둘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지만
그러나 수양대군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이곳으로 귀양 와,

단종 복위운동을 꾀했다가 발각되는 정축지변(1457년)이
발생하게 되면서 순흥땅은 말 그대로 피바다가 되는데...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복위를 모의했던 일대의 선비들은
관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육됐답니다.

가장 번성했던 땅이 역모의 도시가 돼서 하루 아침에
쑥대밭이 되고 만 것으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짐짓 능청스럽게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는 것도 순흥의 선비들이 자식들만이라도

멸족의 화를 피하게 하려 아이들을 다리 밑에 내다버리면서
만들어진 말이랍니다.

또, 그 때 어렵사리 살아 남은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 데서
“청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답니다.

사실 제월교(속칭 청다리)는 단종 복위사건으로 암울하고
참담했던 역사가 끝나고 훗날 선비들이 '개성 송도는 선죽교,

영주 순흥에는 제월교'라고 했듯이 충절이 배어 있는 다리로
기억돼 오고 있답니다.

그러나 청다리는 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과 마을 처녀가 정분이
나서 낳은 아이를 다리 밑에 버린 것에서 유래됐다는 잘못된
사연이 전해지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통치에 걸림돌이 된
유림들을 없애고자 유생들이 연애하여 낳은 자식들이라고
왜곡시켰기 때문이랍니다.

지금은 그 청다리가 일반 다리와 별 차이 없는 시멘트 다리지만

당시엔 돌기둥에 나무 상판을 깔아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1996년 죽계천 정비공사 도중 당시 교각과 좌대가 발굴돼
현재 소수박물관 노천전시장에 옮겨져 있답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 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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