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털 없는 원숭이’이면서도 유독 과도하게 발달한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데....

신화를 보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부드러운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등장하고, 인도의 시바신은 우주가 진행되는
방향으로 긴 머리카락을 흘러 보낸답니다.

이는 머리카락이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우주의 에너지를
나타내는 상징 체계인 셈이랍니다.

특히 여성의 머리카락은 성적 매력과 맞닿아 있는데...

12세가 되어 높은 탑에 갇힌 라푼젤은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지만,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왕자님과 만나는데
건강하고 풍성한 머리는 라푼젤의 처녀성을 의미한답니다.

우리 전통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처녀는 길게 땋아 댕기머리를
내보이다가 결혼을 하면 쪽을 지고 더 이상 머리카락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데,

이는 머리카락에서 느낄 수 있는 여성성을 단속한 탓이랍니다.

반면 남성의 머리카락은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데, 삼손의 힘을
빼앗은 건 전쟁이 아니라 일곱 갈래의 머리카락을 잘라낸
데릴라의 가위질이었으며

물론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을 때 그는 힘을 되찾았답니다.

고대 멕시코에서 머리카락은 신이 거주하는 곳이었는데, 그래서 
아즈텍 성직자들의 머리카락은 다리까지 내려올 정도였답니다.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도 매우 머리가 길었는데, 머리를
깎인다는 것은 왕위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였으며 머리카락은 용기와
지도력을 보여주고 권위의 기반인 정통성의 표식이었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규제하는 방식 속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의 코드가 숨어 있는데..

성적 유혹의 치명적 기능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로,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보는 자는 돌로 변한답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경고하는 포스터가 아닐까요?

현대에 와서도 신에게 영혼을 바치기로 맹세한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수녀와 이슬람 여인들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불교의 스님들은 완전 삭발을 한답니다.

머리카락을 제어함으로써 속세 인간의 욕망을 떠나겠다는
다짐인 셈이랍니다.

한편 중세 기독교의 성직자들은 둘레 머리를 원형으로 남기는
부분 삭발을 하였는데, 원의 형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의
속성을 표현하며 그의 대리인으로 살겠다는 언어이기도 했답니다.

머리카락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자발성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자발적 삭발은 종종 슬픔을 표현한답니다.

그리스 신화의 오레스트는 아버지의 무덤에 머리카락을 바쳤고,
많은 전통 부족에서는 장례식에 머리를 깎으며 죽은 자에게
존경을 표했답니다.

그러나 시위와 봉기에서 거행하는 삭발은 극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저항의 표시이랍니다.

반면 강제 삭발은 모욕과 예속의 증거인데...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뿐 아니라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를
다룰 때 머리부터 깎았던 오랜 관행은 그들의 인격을 박탈
하겠다는 적극적 조치랍니다.

여성들이 싸울 때 종종 볼 수 있는 머리채 잡기도 머리카락을
강제하겠다는 심리적 표출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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