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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 인삼이 유명해진 이유?
작성자 허브누리 (ip:)
  • 작성일 2009-11-26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621
평점 0점

 인삼의 삼(蔘)자가 처음 문헌에 보이는 것은 약 2천여년
전의 전한(前漢)시대 ‘급취장(急就章)’인데...

그 후 인삼이 신약영초(神藥靈草)로 알려지면서 너도 나도
채취에 나서면서 산삼이 귀해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고려 때 이미
천연 삼이 귀해져 관이 그 조달을 위해 백성들을 괴롭힌 것으로
역사 기록에 나온답니다.

특히 무절제한 채삼으로 일찍 씨가 마른 중국이 우리나라 삼을
대량으로 조달해 가고,

왕실에서도 마저 수요가 급증하자 관이 산지 지방 인들에게
할당량을 강요, 민폐가 컸답니다.

이 때문에 도망쳐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정도였는데....
우리 나라에서 재배 기술이 발달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인삼은 그 약효 때문에 나라가 관장하는 전매품으로
다뤄지면서 약재이면서도 한의들에게 조차 그 실상이 아주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지금도 삼밭은 전매공사가 전량 수매하는 홍삼포와 농민들이
마음대로 팔 수 있는 백삼포로 구별이 있지만 과거에도 삼을
쪄서 만드는 홍삼은 관의 감시가 엄했답니다.

개인이 집에서 삼을 찌면 관에서 잡아 갔을 정도 였는데....

그래서 몰래 삼을 찌는 사람들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머리털을
함께 태웠다고 합니다.

인삼은 토정 옥정 황삼 등 그 이름만도 수십 가지가 넘고 4년 근과
6년 근이 주상품입니다.

수요가 많은 4년 근은 삼밭에서 옮겨 심지 않고 그대로 키우기
때문에 직파삼이라고도 하는데 옛 문헌에는 삼에 사람 인(人)자를
붙이는 것은 이 4년 근 때부터라고 합니다.

5년이면 몸통이 다 자라는 인삼이 그때부터 인체의 모양을 갖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인삼 서른 근을 받아 간 것이 서기
742년의 일인데, 그로부터 천년쯤 지나 에토 막부 때는 인삼
붐이 일었다고 합니다.

병이 나도 삼을 쓰면 살아난다 하여 일본 삼상(蔘商)들이 줄을
지어 조선을 찾았다고 합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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