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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주 구천동에 얽힌 이야기....
작성자 허브누리 (ip:)
  • 작성일 2010-08-13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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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천동 계곡을 일컬을 때면 그 앞에는 어김없이 ‘무주’가 붙는데...

무주의 구천동 말고 다른 ‘구천동’이 있어 유독 지명을 덧붙여
구별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부른답니다.

그건 아마도 무주라는 지명이 험준하고 깊은 오지의 느낌을 더해
주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래서 ‘구천동’이란 이름보다 ‘무주구천동’이란 이름에서 더 깊은
계곡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랍니다.

무주구천동은 깊고 깊은 오지의 대명사가 돼서 오래 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명소 중의 명소였는데....

사실 구천동 계곡은 별다른 위락시설이 없었던 때에 여름 물놀이의
명소 중에 명소였는데....

하지만 구천동 계곡의 진면목은 한여름 피서 철의 물놀이가 아니라,
녹음이 우거진 푸른 이끼의 계곡 길을 걸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데,

구천동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13개의 대(臺)와 10개의 '소
(沼)'에다가 수많은 폭포와 계곡이 더해 이뤄지기 때문이랍니다.

백련사는 무주구천동을 품고 있는 덕유산의 유일한 절집인데...

한 때 덕유산 자락에는 14곳의 절집이 들어서 있었고, 절집에
기거하던 승려가 9000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답니다.

승려들이 수도를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쌀 뜨물이 구천동 10경
만조탄까지 흘러내려왔다고 합니다.

구천동이란 계곡의 이름도 9000명 승려들이 살고 있는 '둔소
(屯所)'라 해서 ‘구천둔’으로 불렸던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렇게 바뀌었던 것이랍니다.

그러나 절집은 자취만 남기고 오래 전에 사라지고 말았으니,

300여년 전 덕유산에 올랐던 명재 윤증도 “남암은 덤불에 묻혀
인적이 없고, 북암은 중이 없고 부처만 남았더라”고 썼답니다.

아직 휴가전이시라면 금강 변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내는
어죽도 유명한 무주구천동은 어떨까요?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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