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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라군 승리의 대부분은 유성 때문이었
작성자 허브누리 (ip:)
  • 작성일 2011-03-09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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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동시대에 활약한 부여·고구려·백제·신라에 비해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신라가 불리했던 것은 꼭 영토가 좁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라가 비단길(실크로드·오아시스길·사막길)이나
중국으로 접근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단길을 통해 인간·물자·정보를 포함해서 인류문명이
동서를 이동했기에, 이 길에서는 힘이 생겨났고 이 힘을
얻은 자가 패권을 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단길을 장악하거나 혹은 그것에 접근할 수 있어야만
국가적 생존 혹은 발전을 기약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비단길의 동쪽 끝에 중국이 있었는데, 부여나 고구려
같은 나라들은 만주를 거점으로 중국과 비교적 수월하게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백제나 가야는 해상에 대한 지배권을 바탕으로 중국대륙에
다가갈 수 있었지만 하지만 신라는 이도저도 아니었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육로는 고구려 때문에 여의치 않았고 해로는
백제·가야·왜국 때문에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 같은 최약체 신라가 살아남기 위해 외교술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러나 신라가 생존을 위해 남다른 전쟁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라 제2대 남해왕 11년(서기 14) 신라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을
하는데, 왜국이 전함 100척을 동원해서 신라 해안을 침공했으며,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이번에는 북쪽의 낙랑이 서라벌을 침공해
정예병이 서라벌을 비웠으니 수도를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는데,  

그런데 이때 희한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밤중에 유성이 하늘에서
낙랑군 진영으로 툭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낙랑군 진영에서 일대 소동이 발생했는데, 유성을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인 병사들 사이에서 심리적 동요가 발생한 것으로,

더 이상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낙랑군 지도부는 신속히
철군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유성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서, 위기에 처한 신라군을
살리곤 했는데...

위기 때마다 나타나서 신라군을 도와준 유성, 이 유성은 신라군이
단독 혹은 공동으로 수행한 전투에서 자주 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주 등장한 유성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읽어 보면, 이 유성의 정체가 실은
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유신 열전'에는 불씨를 내장한 허수아비를 연에 띄워 적진에
떨어뜨리는 신라군의 노하우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라군은 가짜 유성을 적진에 떨어뜨려 불안감을 조성하는 한편
"적진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선전전을 전개해서 아군의 사기를
높이곤 했던 것입니다.

허브누리(www.herbnuri.co.kr) &(주)지식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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